1889년 8월 11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기독교인이 된 후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1916년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YMCA)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1918년 창의문밖 교회 전도사와 조선기독청년회 간사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으로 독립선언문에 서명하였다가 체포되어 약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잡지 『신생활(新生活)』을 창간하였고, 1927년 신간회에 참가하였으며 1928년 중앙보육학교 초대 교장에 취임하였다.
이후 친일 잡지 『동양지광(東洋之光)』을 창간하고, 일제의 전쟁 수행과 조선인 동원을 목적으로 조직된 관제 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국민총력조선연맹의 참사와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으로 활동하며 황민화·지원병·학병을 권장하는 강연을 전개하는 등 변절하여 친일 행위에 가담하였다.
광복 후 1948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조사되었으며, 이로 인해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2009) 언론·출판 및 친일단체 부문에 수록되었다.
1951년 9월 26일 별세, 망우리공동묘지(현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영면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