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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소개


조선시대 무신 · 영의정

신경진

Shin Gyeong-jin 申景禛
1575~1643

조선 중기 영의정

157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며, 임진왜란 당시 충주 탄금대에서 전사한 도순변사 신립(申砬)의 아들이다.

1623년 김류(金瑬)·이귀(李貴) 등과 능양군을 추대하는 인조반정을 주도하여 정사공신 1등에 녹훈되었다. 반정 후 훈련도감·호위청·포도청의 대장을 겸직하여 왕실 안전의 책임을 맡았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 당시 훈련대장으로 어가를 호위하였고, 1627년 정묘호란 때 강화도로 왕을 호종하여 이듬해 부원군(府院君)에 봉해졌다.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수하 군사를 이끌어 왕의 남한산성 피난길을 조력하였고, 화의 성립 후 병조판서에 임명되었다. 

1637년 우의정, 1638년 좌의정으로 승진하였으며, 사은사(謝恩使)로 청나라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1641년 재차 사은사로 청나라에 들어가 구금되어 있던 김상헌(金尙憲) 등을 옹호하고, 청나라의 과도한 요구와 잦은 내정 간섭을 철회하게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1642년 영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지병으로 사퇴하였다가 이듬해 재임명되었다.

1643년 별세, 망우리공동묘지(현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영면하였다.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역사를 잇는 일.
신경진
1575
  • 서울 출생
1623
  • 김류(金瑬)·이귀(李貴) 등과 인조반정 주도, 정사공신 1등 녹훈
1624
  • 이괄(李适)의 난 당시 훈련대장으로 어가(御駕) 호위
1625
  • 형조판서 임명
1627
  • 정묘호란 당시 강화도로 왕을 호종, 이듬해 부원군(府院君)에 봉해짐
1635
  • 파직 후 복직, 형조판서·훈련대장 겸직
1636
  • 병자호란 당시 왕의 남한산성 피난길 조력, 화의 성립 후 병조판서 임명
1637
  • 우의정 임명
1638
  • 사은사(謝恩使)로 청나라 파견, 귀국 후 좌의정 승진
1641
  • 사은사로 청나라에서 구금된 김상헌(金尙憲) 등 옹호
1642
  • 영의정 임명, 지병으로 사퇴
1643
  • 영의정 재임명 후 별세, 망우리공동묘지(현 망우역사문화공원)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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