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1월 16일 전라남도 강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윤식(金允植)이며, 아호 영랑(永郞)은 《시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하였으며, 재학 시절 홍사용·박종화·정지용·이태준 등과 교류하며 문학적 안목을 키웠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서를 품고 고향 강진으로 내려와 동지들과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태극기 500여 개를 제작하려 하였으나 강진경찰서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대구형무소에서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일본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에서 영문학을 공부하였으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귀국하였다.
1930년 박용철·정지용·이하윤 등과 시문학 동인을 결성하고 《시문학》 창간호에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등 6편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4년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1935년 첫 시집 『영랑시집』을 간행하였다. 전기에는 순수서정시로 한국 서정시의 극치를 보여주었으며, 말년에는 「독을 차고」·「거문고」·「묘비명」 등 저항의식을 담은 시를, 광복 이후에는 「바다로 가자」 등 사회참여 의식을 드러낸 작품을 발표하였다.
1950년 6·25전쟁 중 별세, 망우리공동묘지(현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영면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