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 함경남도 단천에서 태어났다. 아호는 오촌(梧村)이다.
1906년 이준(李儁) 등과 애국계몽단체 한북흥학회(漢北興學會)를 조직하여 함경도 출신 인사들의 국권 회복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대한자강회 활동에도 참여하며 문화운동을 전개하였다.
1917년 양명학을 주체적으로 수용한 저서 『대학신강의(大學新講義)』를 저술하였다. 1920년 조선교육회 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발기총회에서 임시의장으로 사회를 맡았으며 창립총회에서 이사로 선출되어 물산장려운동을 이끌었다.
1940년 4월 9일 별세, 망우리공동묘지(현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영면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