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4년 7월 15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1886년 박문국 주사로 임명되어 『한성주보』 기자로 활약하였다.
1902년 개화당 사건으로 일본에 망명하여 손병희·권동진·양한묵 등과 교유하며 천도교에 입교하였고, 1906년 귀국 후 『만세보』 사장, 1907년 대한협회 부회장, 1909년 『대한민보』 사장으로 언론을 통한 민족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손병희·최린·권동진 등과 독립운동을 결의하고 거사 준비 전반에 깊이 관여하였으며,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태화관 독립선언식에 참여한 후 체포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출옥 후 전서·예서의 대가로서 서화계의 정신적 지도자로 활약하였으며, 1928년 『근역서화징』과 『근역인수』를 완성하여 한국 서화사 연구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광복 후 서울신문 사장,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6년 대한제국 황제 옥새를 반환받았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식 개회사를 담당하였다.
1953년 4월 16일 대구에서 별세, 망우리공동묘지(현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영면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