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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대통령장) · 서예가 · 언론인

오세창

Oh Se-chang 吳世昌
1864~1953

3 ·1운동 민족대표 33인 / 한성순보 기자 · 「근역서화징」편술

1864년 7월 15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1886년 박문국 주사로 임명되어 『한성주보』 기자로 활약하였다. 

1902년 개화당 사건으로 일본에 망명하여 손병희·권동진·양한묵 등과 교유하며 천도교에 입교하였고, 1906년 귀국 후 『만세보』 사장, 1907년 대한협회 부회장, 1909년 『대한민보』 사장으로 언론을 통한 민족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손병희·최린·권동진 등과 독립운동을 결의하고 거사 준비 전반에 깊이 관여하였으며,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태화관 독립선언식에 참여한 후 체포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출옥 후 전서·예서의 대가로서 서화계의 정신적 지도자로 활약하였으며, 1928년 『근역서화징』과 『근역인수』를 완성하여 한국 서화사 연구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광복 후 서울신문 사장,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6년 대한제국 황제 옥새를 반환받았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식 개회사를 담당하였다.

1953년 4월 16일 대구에서 별세, 망우리공동묘지(현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영면하였다.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역사를 잇는 일.
오세창
1864
  • 7월 15일 서울 이동(현 중구 장교동) 출생
1886
  • 박문국 주사 임명, 『한성주보』 기자로 활약
1902
  • 개화당 사건으로 일본 망명, 손병희·권동진·양한묵 등과 교유, 천도교 입교
1906
  • 손병희와 함께 귀국, 『만세보』 사장 취임
1907
  • 대한협회 부회장으로 활동
1909
  • 『대한민보』 사장 취임
1918
  • 서화협회 창립 발기인 참여
1919
  •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으로 독립선언서 서명, 태화관 독립선언식 후 체포
1920
  • 10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 선고 (1921년 12월 가출옥)
1928
  • 『근역서화징』·『근역인수』 출간
1945
  • 광복, 서울신문 사장 선임, 건국준비위원회 위원
1946
  • 8월 15일 대한제국 황제 옥새 반환 수령
1948
  • 대한민국 정부수립식 개회사 담당
1953
  • 4월 16일 대구 피난 중 별세, 망우리공동묘지(현 망우역사문화공원) 영면
1962
  •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2017
  • 묘역 국가등록문화재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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