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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애국장)

오기만

Oh Ki-man 吳基萬
1905~1937

상해한인청년동맹 집행위원장

1905년 8월 21일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났다.

서울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수료한 후 수차례 중국을 왕래하며 민족운동가들과 교유하였다. 

1928년 신간회 배천지회 설립대회에서 격문을 배부하려다 체포되어 출판법·보안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1929년 유일독립당 상해촉성회에 참여하고 유호한인독립운동자동맹을 조직하였으며, 구연흠·조봉암 등과 함께 청년반제상한인청년동맹을 결성하고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31년 귀국하여 함남 진남포에서 조선공산당 재건 및 적색노동조합 결성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4년 상하이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었고,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중병을 얻어 1936년 6월 형집행정지로 출옥하였다.

1937년 8월 23일 순국, 망우리공동묘지(현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영면하였다.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역사를 잇는 일.
오기만
1905
  • 8월 21일 황해도 연백군 은천면 연동리 출생
1928
  • 신간회 배천 지회 설립대회 격문배포로 체포, 출판법 위반 등의 혐의로 옥고를 치른 후 중국 상해로 망명
1929
  • 유일독립당 산하 상해촉성회 참여
  • 유호한인독립운동자동맹 조직, 격문 반포
  • 청년반제상한인청년동맹 조직, 집행위원장 역임
1931
  • 국내 잠입, 조선공산당 재건 및 적색노동조합 결성
1932
  • 적색노동조합 진남포부두위원회, 진남포상공학교 적색비밀결사 결성 시작
1934
  • 상해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 국내로 압송
  •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징역 5년 선고
1936
  • 6월 11일 중병을 얻어 형집행정지 출옥
1937
  • 8월 23일 순국 (영면장소?)
2003
  •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2017
  • 묘역 국가등록문화재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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