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5월 24일 경상남도 동래부(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15년 부산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박재혁·최천택 등 동창생과 비밀결사 구세단을 조직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서울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한성정부 수립 운동에도 가담하였다.
1920년 9월 밀입국한 박재혁의 폭탄을 은닉해 주고 거사 준비 자금 1천 원을 제공하였으며, 박재혁이 9월 14일 부산경찰서 투탄 의거를 감행한 후 연루자로 체포되었으나 무혐의로 석방되었다.
1921년 조선청년연합회 창립대회에 부산청년회 대표로 참석하였고, ‘제2차 독립운동계획’ 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만주일보』·『시대일보』·『조선일보』 부산지국을 경영하며 언론 활동을 이어갔다.
광복 후에는 정당통일기성회 조직, 『독립신문』 재창간, 박재혁의사추모회 개최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948년 8월 30일 별세, 망우리공동묘지(현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영면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