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 1월 2일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다.
1907년 신민회(新民會)에 가입하였고, 1910년 관립공업전습소 염직과를 졸업한 뒤 만주 용정으로 망명하여 대종교에 입교하였다.
이후 간민교육회·중광단 활동을 하며 신흥무관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였다. 1915년 동제사(同濟社)에 가입하였고,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임시의정원 의원 및 한성임시정부 평정관에 선출되었다. 중국어에 능통하여 임시정부의 대중국 외교를 전담하였다.
1921년 전권특사 신규식을 수행하여 중국 호법정부 대총통 쑨원을 회견하고 임시정부 승인을 받아내는 데 기여하였다.
1932년 윤봉길의 홍구공원 의거 후 임시정부를 가흥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중국 정부와 교섭하여 지원을 이끌어냈으며, 1933년 김구와 장제스의 면담을 주선·통역하여 뤄양군관학교에 한인특별반을 설치하고 독립군 간부를 육성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1940년 한국광복군 창설 실무를 주도하였고, 임시정부 법무부장 겸 국무위원으로 임명되어 광복 때까지 임시정부의 중책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에는 임시정부 주화대표단장으로 중국 내 교포들의 생명과 재산 보호에 힘썼다.
1949년 3월 9일 서울 창신동에서 별세, 망우리공동묘지(현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영면하였으나 1993년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