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5월 15일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메이지학원(明治學院)에서 수학하며 유학생 단체 태극학회에서 활동하고 기관지 《태극학보》에 계몽적 논설을 발표하며 자강운동에 앞장섰다.
1908년 귀국 후 대성학교·경신학교 등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민족 교육에 힘썼다. 1912년 상하이로 망명하여 신채호·조소앙 등과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하고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보신각에서 조선 13도 대표자 명의의 「애원서(哀願書)」를 낭독하고 독립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어 징역 8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중앙고보·배재고보 등에서 역사를 가르치며 역사 연구에 매진하였고, 1927년 신간회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33년 조선일보 편집고문으로서 평이한 역사 서술을 통한 민중계몽에 힘썼으며, 정인보·안재홍과 함께 조선학 운동을 주도하였다.
1934년 진단학회(震檀學會)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고증 사학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1939년 4월 3일 순국, 망우리공동묘지(현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영면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