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 5월 16일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영신학교(永信學校) 교사로 재직하며 함흥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던 중, 1919년 이근재·이순기·이영화·한영호 등과 결의하고 장날인 3월 3일을 거사일로 정해 독립선언서 3천여 매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3월 2일 산발적 시위로 일본 경찰의 경계가 강화되면서 거사 당일 검거되었고,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신창리교회에서 시무하며 함흥지방주교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흥업구락부에 가담하여 독립정신 고취에 힘썼다. 광복 후 월남하여 함남노회장을 역임하였다.
1966년 6월 11일 별세, 망우리공동묘지(현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영면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