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9월 29일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흥근(興根), 아호는 온재(溫齋)이다.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영문과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고 귀국하여 『조선일보』·『중앙일보』 기자로 근무하였다.
1935년 극예술연구회에 가입하고 1936년 희곡 「촌선생(村先生)」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등단하였다.
1938년 극단 중앙무대를 설립하여 극작·연출·제작을 맡으며 1963년까지 40여 편 이상을 연출하였다. 한편 조선총독부 지원 관제 연극경연대회에 「북해안의 흑조」를 출품하는 등 변절하여 친일 행위에 가담하였으며, 이로 인해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2009) 연극·영화 부문에 수록되었다.
광복 후 1945년 극단 민예를 조직하여 우익 민족연극운동을 전개하였고, 1949년 유치진과 함께 한국연극학회를 발족시켰다.
1950년 국립극장 전속 극단 신협의 대표로 민족극의 기반을 다졌으며, 1953년 서라벌예술대학 연극학과 초대 학과장을 맡았다.
1958년 극단 원방각(圓方角)을 창설하여 소극장운동을 펼쳤다. 대표작으로 「촌선생」·「나상」·「견우와 직녀」·「대수양」·「지옥문을 열어라」 등이 있으며, 평론집 『현대희곡론』을 남겼다.
1968년 10월 29일 별세, 망우리공동묘지(현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영면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