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12월 16일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났다.
1916년 감리교 선교사 사애리시의 추천으로 이화학당 보통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였고, 1918년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1학년에 진학하였다.
1919년 3월 1일 동급생들과 만세시위에 합류하였고, 휴교령 이후 독립선언서를 숨겨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유지·유림을 설득하며 거사를 준비하였다.
3월 31일 밤 매봉산에서 봉화를 올려 인근 24곳에 거사를 알렸으며,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약 3천 명의 시위 선두에 서서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무력 진압으로 부모를 포함해 19명이 순국하는 참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헌병들에게 직접 항의하다 체포되었다.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상고를 스스로 포기하였다.
서대문 감옥에서도 독립만세를 멈추지 않아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고, 1920년 3월 1일 옥중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중상을 입었다.
1920년 9월 28일 서대문 감옥에서 순국, 이태원공동묘지에 영면하였으나 일제의 택지개발로 묘소가 실전되어 무연고 묘와 함께 합장된 망우리공동묘지(현 망우역사문화공원)에 분묘합장 표지비를 건립하여 기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