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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내 인물

송암 서병호
애국장
1885. 7. 7.(황해남도 장연군) ~ 1972. 6. 7.
“나라가 있어야 내가 있다”
최초의 유아세례를 받은 초기 장로교의 신자이며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봉사로 평생을 바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 1885
    황해도 장연군 서경조 목사 차남 출생
  • 1893
    언더우드가 설립한 민노아학당(현재 경신학교) 입학
  • 1901
    경신학교에서 4년간 공부
    1905년 경신학교 제1회 졸업, 솔내 해서제일학교 교장직
  • 1907
    대성학교에서 1년 간 교편생활
  • 1909
    경신학교 교원 재직 후 학감으로 승진
  • 1914
    교직 사임, 중국 망명, 남경 금릉대학 철학과 입학
    1918년 금릉대학 철학과 졸업
  • 1919
    상해 정착, 신한청년당 조직 당수로 취임, 임시정부 제헌의정원 내무위원 역임
  • 1920
    미국 의회 시찰단 상해 방문 환영위원회 위원으로 진정서 전달
  • 1921
    국민대표회 기성회 조직, 위원 역임
  • 1923
    남화학원(교문 영어교육) 설립
  • 1933
    인성학교 이사장직 역임
  • 1947
    상해에서 귀국
  • 1948
    경신학교 이사 선출
    1950년 경신학교 이사장 피선
  • 1953
    기독교학교연합회를 조직, 제14대 경신학교 교장으로 취임
  • 1972
    6월7일 숙환으로 별세
  • 1980
    건국포장 추서
  • 1990
    건국훈장 애국장으로 승급
  • 2008
    11월 19일 망우리공원에서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

1885년 7월 7일 황해도 장연 출생, 해서제일학교, 안창호의 평양대성학교, 경신학교에서 교편을 잡다 국권 피탈 후 중국으로 망명하였으며 1972년 6월 7일 별세하였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고 2008년 현충원으로 이장되었으나 큰 비석이 남아 있다.

1919년 신한청년당의 당수를 맡았고 임시정부의 의정원 내무의원으로 활약하였다. 1922년 대한적십자사를 창설하였고 1923년 남화학원을 설립하며 교육에도 힘썼다. 1947년 귀국 후 새문안교회 사무장, 경신학교 이사 등을 지내고 1960년 경신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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