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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내 인물

명재 이탁
애국장
1898. 06. 02.(경기도 양평) ~ 1967. 4. 24.
“독립군 출신 서울대교수”
독립군 북로군정서 특무반장으로 복무하며 1920년 청산리전투에 참가함. 1932년에는 조선어학회에 가입하여 한글 표준말 제정에 힘썼으며 해방 후 서울대에서 국어학교수로 재직.
  • 1989
    경기도 양평 출생
  • 1916
    경신학교에 입학하여 장지영으로부터 조선어문법을 배움
  • 1919
    3·1운동으로 만주 집안현 북로군정서 사관연성소에 입소
  • 1920
    사관연성소를 졸업 후 김좌진 등이 주도한 청산리 전투에 소대장으로 참전
  • 1923
    중국 화전현 화림학교에 교사로 부임
  • 1924
    『신단민사』 보급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
  • 1926
    가출옥하여 양평으로 귀향
  • 1928
    정주 오산학교에서 근무
  • 1932
    한글학회 회원으로 가입해 쌍자법 위원, 맞춤법 통일안 제정위원, 표준말 사정 위원 및 이사
  • 1945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
  • 1957
    10월 9일 문교부 장관에게 한글 공로상 수상
  • 1961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정년퇴직
  • 1967
    간장병으로 사망
  • 1968
    대통령 표창 추서
  • 1991
    애국장을 서훈 추서

1898년 경기 양평에서 출생하였으며 1928년 오산학교 국어 교사로 부임했다. 1932년 조선어학회에 가입하여 맞춤법 통일안 제정위원, 표준말 사정위원 등을 지냈으며, 해방 후부터 1961년까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국어학을 가르쳤으며 1967년 별세했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고, 1992년 현충원으로 이장되었으며 서울사대 제자들이 세운 비석이 남아 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주로 가서 1920년 10월 청산리 전투에 참여했다. 1924년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1928년 오산학교 국어 교사로 부임했다. 1932년 조선어학회에 가입하여 맞춤법 통일안 제정위원, 표준말 사정위원 등을 지냈으며, 해방 후부터 1961년까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국어학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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