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8월 15일 강원도 인제에서 출생한 박인환은 한국 1950년대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이다. 어린 시절 서울로 유학와 경성제일고보를 거쳐 평양의전을 다녔다. 해방 직후 의전을 중퇴하고 상경하여 종로 낙원동에서 ‘마리서사’라는 서점을 경영하였다. 1948년 서점을 그만두면서 이정숙과 혼인했다. 1951년에는 육군소속 종군작가단에 참여한 바 있고, 1955년에는 직장인 대한해운공사의 일 관계로 남해호 사무장으로 미국에 다녀오기도 했다. 특히 1949년 김수영·김경린·양병식·임호권 등과 함께 낸 합동시집「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은 광복 후 본격적인 시인들의 등장을 알려주는 신호가 됐다.
1950년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밤의 미매장」, 「목마와 숙녀」 등을 발표했다. 이런 작품들은 도시문명의 우울과 불안을 감상적인 시풍으로 노래하여 주목을 끌었고 1956년 31세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1955년에 발간된 「박인환선시집」에 그의 작품이 망라되어 있다. 특히 「목마와 숙녀」는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서 우울과 고독 등 도시적 서정과 시대적 고뇌를 노래하고 있다. 1956년 작고 1주일 전에 쓴 「세월이 가면」은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불리고 있다. 1976년 그의 20주기를 맞아 장남 박세형이 시집 「목마와 숙녀」를 간행했다. 1950년이라는 전쟁과 허무, 비탄과 우울 속에서 술과 낭만으로 시를 썼다.
가장 1950년대 다운 시인이었으며, 종군기자로 포연 속을 누볐고, 그 슬픔을 노래 부를 줄 알았다. 자신의 언어로 우울했던 1950년대를 노래했고, 모더니즘을 구현한 것이다. 공원 초입 우측 아래에 자리한 무덤 묘비에는 「세월이 가면」노래 가사가 적혀 있다. 글은 소설가 송지영이 쓴 것이다. 무덤 속에는 그가 즐기던 카멜 담배와 조니워커 술이 함께 묻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