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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내 인물

이태건
애족장
1885. 11. 01.(평북 위원) ~ 1958. 05. 13.
  • 1885
    11월 1일 평북 위원에서 출생
  • 1905
    1906년 경 선천의 신성중학교 내 사범 강습회에서 공부
  • 1911
    조선 총독 암살 모의사건으로 체포
  • 1912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년 선고
  • 1913
    경성복심법원에서 무죄 판결 석방
  • 1921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 복역하다가 1922년 5월 가출옥
  • 1925
    시대일보 선천지국장
  • 1926
    선천기독청년총회에서 이사 당선
  • 1927
    신간회 선천지부 창립 총회에서 전형위원에 선정
  • 1928
    평북남부지방 연합산업품평회 협찬회 발기인회 평의원으로 참석
  • 1930
    선천여고 설립 실현 촉진 설치기성회 서기
  • 1930
    조선일보 선천지국 지국장, 선천 유지로 구성된 구제회 발기인
  • 1931
    조선일보에 「선천의 장래」 기고
  • 1932
    선천 금융조합총대의 천북동 총대 당선
  • 1958
    5월 13일 사망
  • 1977
    대통령 표창
  • 1990
    애족장 서훈

1911년 일제가 황해도, 평안도 지역 민족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사건 혹은 선천사건과 관련되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600여 명이 체포되었고 123명이 기소되어 1심 재판에서 105명이 유죄 판결을 받아 105인사건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대일보와 조선일보의 선천지국장을 지냈고 1930년대 중반 중국에서 활동했다. 

1911년 일제가 황해도, 평안도 지역 민족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사건 혹은 선천사건과 관련되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600여 명이 체포되었고 123명이 기소되어 1심 재판에서 105명이 유죄 판결을 받아 105인사건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대일보와 조선일보의 선천지국장을 지냈고 1930년대 중반 중국에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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