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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내 인물

춘파 서동일
애족장
1893. 12. 25.(경상북도 경산) ~ 1965. 4. 26.
“다물단의 행동대장”
일제 앞잡이를 처단하는 다물단을 조직하고 국내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름
  • 1893
    12월 25일 경북 경산에서 출생
  • 1923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북경의 다물단과 한국국민당 가입
  • 1924
    재정부장 겸 밀사로 국내 1차 잠입, 군자금 모집
  • 1925
    2차~3차 국내 잠입. 3차 잠입시 체포
  • 1926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 구형, 3년 선고
  • 1927
    가출옥으로 석방
  • 1945
    한국민주당의 발기인 참여
  • 1965
    4월 26일 사망
  • 1990
    애족장 서훈 수여

1893년 12월 25일 경북 경산에서 출생했다. 1923년 1월 중국 베이징으로 망명하여 국민당에 가입하여 재정부장을 역임하였다. 1925년 4월 무언실행(無言實行)을 행동지침으로 일제 앞잡이를 처단하는 다물단(多勿團)을 조직했다. 1926년 3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제주도로 보내져 거주제한 조치를 받고 곤궁하게 지내다가 8.15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1965년 4월 26일에 별세하여 망우리에 먼저 묻힌 부인(최옥경)과 함께 안장되었다.

1923년 1월 중국 베이징으로 망명하여 국민당(남형우, 배천택 등이 국권회복을 위해 군대를 양성하고 무력으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만든 조직)에 가입하여 재정부장을 역임하였다. 1924년 1월 국민당으로부터 군자금 모집의 밀명을 받고 국내로 잠입해 경북 대구 일대에서 군자금 1,300여원을 모집하여 같은 해 2월 베이징으로 돌아와 본부에 전달했다. 1925년 1월에 재차 남형우의 명을 받고 귀국하여 군자금을 모집했으며, 같은 해 4월 무언실행(無言實行)을 행동지침으로 일제 앞잡이를 처단하는 다물단(多勿團)에 가담해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다가 1925년 10월경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다물단은 용감, 전진, 쾌단(快斷)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1926년 3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제령(制令) 7호 위반 및 공갈죄 등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제주도로 보내져 거주제한 조치를 받고 곤궁하게 지내다가 8.15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으며, 그의 묘역은 2017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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