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강석우와 어머니 허석운의 2남 4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남. 고원군 고원읍으로 나가 고원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아이생활>에 동시「버드나무 열매」를 발표하였고 이 작품이 공식 지면 첫 발표로 확인이 된다. 고원공립보통학교졸업 후 함흥의 영생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45년 11월부터 고원중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48년 청진제일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54년 최수정과 결혼 후 2녀 1남을 얻었다. 1960년엔 연세대에 출강하였고 이무렵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아동문학 분과위원장이 되었다. 1985년 국민훈장 대통령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1931년 영생고등보통학교에서 「봄이 왔다」「무궁화에 벌나비」(<신소년>2월호),「길가에 얼음판」「이 앞집, 저 뒷집」(<아이생활>3월호) 등 총9편의 동시를 발표한다.
1932년 「가을바람이」(<아이생활>12월호) 등의 동시를 발표하고, 1933년 「연기야」(<아이생활>1월호),「이상한노래」(<어린이>5월호) 등의 동시를 발표하였다. 조선어연구회에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제정 공포하였다.
1935년 윤석중의 청탁을 받고, 물을 마시고 하늘을 쳐다보는 닭을 보면서 고향 하늘을 그리워하는 동시「닭」을 창작하였고. 1937년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이후 광복 때까지 교회의 주일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창작 동화와 동극을 실험하고 한글을 연구하였다. 조선의 아이들을 위해 우리말과 우리글로 된 동시집을 내야겠다고 결심하여 <소년> 창간호에 「닭」이 발표되었다.
1938 동시「봄비」(<아이생활>4월호), 동극「비바람은 지나고」(<아이생활>12월호) 등을 발표하였다.
1940년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동화「전등불의 이야기」가 당선되어 1월 6, 8, 10일에 게재되었고 동화「딱따구리」(<소년>12월호) 등을 발표하였다.
1946년 6월에 고향 친구인 유관우가 청진에서 아동문학 재건 운동을 하자며 소식을 전해 와 청진으로 갔다.
1957년 5월 5일 그의 주도로 제정된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이 공포되었는데 이는 1923년 방정환이 어린이날을 제정한 것과 더불어 어린이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한 쾌거로 평가된다.
1960년 어깨동무학교 운동을 시작하고 이 무렵 교육계의 명망가 조석기가 교장으로 있는 인천 창영국민학교와 이화여대부속국민학교에서 글짓기 수업을 진행하였다.
1963년 부정기 간행 잡지 <아동문학> (주간 최석기, 편집위원 강소천·김동리·박목월·조지훈·최태호)을 배영사에서 창간하였다. 창간호에 동화「수남이와 수남이」를 발표하였다. <아동문학>은 매호 아동문학의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개척하는 주제로 심도 있는 지상 심포지엄을 여는 등 아동문학의 이론적 저변을 확대한 잡지로 평가된다.
1963년 5월 문화공보부에서 주최하는 제2회 5월 문예상 본상을 수상하였다. 1965년 소천아동문학상이 제정되어 운영되었다. 1987년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강소천 문학비가 건립되고 2006년엔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 강소천 문고가 개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