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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행 배를 탔으나 밀항사기에 걸려 실패한 이후 서울에 돌아와 사촌형 차도균의 권유로 1963년10월에 키보이스 밴드에 합류하여 보컬로 활약한다. 미8군 무대에 오른 첫날부터 큰 인기를 끌었으며, 특히 시민회관에서의 공연 때 가죽부츠 대신에 검은 고무장화를 신고 노래를 부른 모습은 한국의 엘비스로 깊이 각인되는 계기가 되었다. 1966년 11월 10일, 신세기레코드 사장의 아들 강찬호 작사에, 정민섭이 엘비스프레슬리의 <Anything that’s part of you>를 편곡해서 만든 노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이 완성되었다. 키보이스는 1965년 해운대에서 한국록그룹 사상 처음으로 단독야외공연을 해 한국의 ‘비틀즈’, 혹은 ‘비치보이스’로 부리며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1967년 신세기레코드의 전속작곡가 홍현걸의 주선으로 솔로로 데뷔하였고, 같은 해 TBC(동양방송) 라디오 드라마 주제가인 <사랑의 종말,이봉조 작곡>이 크게 히트를 쳐 연말에 동양방송 방송가요 대상 신인상을 수상, 동갑내기 배호와 함께 트로트와 팝으로 가요계를 양분하는 스타가 되었다.
1960년대 영화배우 제임스 딘, 가수 클리프 리차드가 당시 우상으로 팬의 사랑을 받은 것처럼, 차중락은 한국가수로는 첫 번째 우상이었다. 남성적 매력이 넘치는 외모, 경복고 출신의 엘리트, 20대 중반의 청분, 그리고 가슴을 파고드는 감성적 목소리는 대중의 스타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그의 사후 다음 해부터 가수 차중락을 기리는 낙엽상이 제정되어 그 해 가장 뛰어난 신인들에게 상이 수여 되었는데, 낙엽상 제정 첫해 수상자는 나훈아와 이영숙이 받았으며, 1972년 제4회 때는 김세환, 이수미가 수상하였다.